임오군란
흐름(맥락)
활약인물
주요사건, 키워드
임오군란 이전의 사회
1. 흥선대원군의 대내 개혁 : 왕권강화와 민생안정
→ 대전통편 완성, 서원 정리, 경복궁 중건
→ 양전사업, 호포제, 사창제
2. 제병남신을 거치면서 통상수교 거부 정책 실현 → 최익현의 상소로 대원군 하야
3. 대원군의 하야 이후 민씨정권이 들어서면서 대원군과는 차별되는 정책 실시
4. 그 과정에서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같은 통상개화파의 성장
대외적으로는 운요호 사건이 벌어지면서 개항 (강화도조약, 1876)
5. 개항이 되면서 개항에 대한 입장이 두 부류로 나뉨
ⓐ 온건개화파 : 김홍집, 중국의 중체서용 → 동도서기
ⓑ 급진개화파 : 김옥균, 일본의 메이지 유신 → 문명개화
6. 개화파에 의하여 통리기문아문 설치(1881)
ⓐ 5군영 → 2영
ⓑ 별기군(신식군대 창설)
ⓒ 일본에 조사시찰단, 중국에 영선사 파견(조사시찰단은 암행어사적 성격)
7. 2차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에서 들여온 황쭌셴(황준헌)의 <조선책략>을 반대하는
위정척사파의 <영남만인소, 이만손 중심> 전개
8. 하지만 주류세력에 의해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체결, 답방형식의 보빙사 파견
임오군란
1. 5군영 → 2영으로 축소되어 많은 군인이 실직
2. 게다가 2영의 군인이 별기군(신식군대)에 비해 심하게 홀대 받음 : 급료 13개월치 미지급
3. 2군영의 군인들은 도시 빈민들과 연계 → 임오군란의 주도 세력이 됨
4. 통리기무아문에서 개화정책이 추진되면서 재정확보 필요 → 증세 강화 → 서민들에 부담
5. 조일무역규칙 때문에 곡물 유출이 많아져 쌀값 폭등
→ 증세강화와 더불어 서민들에 부담 증가
6. 민중이 폭발하여 임오군란 발생(1882)
임오군란 과정
1. 지급받은 급료에서 쌀과 모래와 겨가 섞여 나옴 → 군인들의 폭발
2. 대동미 관리기구인 선혜청 관리인 민겸호 살해, 명성황후 피신, 고종의 요청으로 대원군 재섭정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 살해, 일본 공사관 화재
3. 영선사 대표 김윤식이 명성황후의 지시하에 청에 원병 요청
4. 청나라가 임오군란 진압, 흥선대원군 압송
결과
1. 정치적 : 청의 내정간섭 심화(고문정치)
→ 위안스카이(군사분야), 청나라 군대 주둔
마젠창(정치분야)
묄렌도르프(외교, 재정분야)
2. 경제적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 → 간행이정 유명무실화 됨
3. 정치적 : 일본과 제물포 조약 체결 → 일본군이 주둔
4. 경제적 : 조일수호조규속약 → 간행이정 확대(10리 → 50리 → 2년 후 100리)
* 본 포스팅은 EBS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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