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흐름(맥락)
활약인물
주요사건, 키워드
동학(사건의 계기)+농민(한계)운동
1. 일본은 갑신정변을 통해 청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깨닫고
정치적 영향력 확대 대신 경제적 영향력 확대에 힘씀
2.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 1876)으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확보
3. 미↔면 교환 시스템 확대 → 조선의 면제품 수공업자 몰락, 곡물가격 폭등
4. 청의 개입에 의한 갑신정변 실패 이후 청의 간섭이 더 심해짐
5. 조선을 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임
6. 조-러 비밀협약을 청과 영국이 견제 →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거 (영국명 : 해밀턴 섬)
7. 갑신정변(1884)으로 국내의 개화세력은 위축(일망타진)
8. 급진개화파는 위축되었지만 온건개화파의 동도서기적 개혁은 여전히 진행 중
→ 전신(1885), 광혜원(훗날 제중원으로 개명, 1885), 육영공원(=학교, 1886)
한성주보(1886), 전등(1887)
9. 이 결과 세금이 늘어남에 따라 반(反)봉건, 외세 간섭 증가로 인한 반(反)외세적 분위기가 조성됨
10. 반외세, 반봉건은 이 당시 기층민중들의 입장과 비슷
11. 사실 갑신정변은 일본을 등에 업있기 때문에 반외세가 아님
지조법 개혁 주장 등은 반봉건이 맞음
12. 반외세, 반봉건의 입장을 대표했던 운동이 <동학농민운동>
13. 동학의 출발지는 경상도이지만 동학농민운동(1894)은 충청, 전라 일대에서 발생, 확대
14. 흥선대원군에 의해 사형 당한 최제우의 신원 복권 요구 → 교조신원운동
15. 삼례집회(1892) : 종교적 요구
보은집회(1893) : 정치적 요구 -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 척왜양창의 : 일본과 서양 세력을 배척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킴
16. 1차 동학농민운동(반봉건>반외세)
17.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의해 고부봉기(만석보 사건)
18. 안핵사 이용태가 내려와서 주동자 색출
19. 안핵사 이용태의 학정에 의해 백산봉기 → 운동 전개
20. 황토현,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 격파 → 전주성 점령
21. 조선 정부가 청에 도움 요청 → 청나라군 파견(아산)
22. 텐진조약에 의해 일본군도 조선에 상륙(인천)
23. 청과 일본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것을 감지한 조선 정부는 농민들과 전주화약을 체결
24. 전주화약의 결과로 각각의 개혁기구를 만듦
→ 농민군 : 집강소 정부 : 교정청
25. 집강소를 중심으로 폐정개혁안을 만듦 → 받아들여지지 않음
→ 신분제 폐지, 과부 재가 허용, 토지균분
(출처 : 오지영의 소설 '동학사' - 100% 사실은 아니다.)
26. 2차 동학농민운동(반외세>반봉건)
27. 일본이 무력으로 경복궁 점령 후 청일전쟁(1894) 개시
28. 일본의 내정간섭으로 인해 정부는 교정청을 없애고 군국기무처 설치
29. 남접(전봉준)과 북접(손병희)이 연합하여 우금치에서 연합군(관군+일본군+민보군)과 대치
30. 우금치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고 동학농민운동 실패
동학농민운동의 의의
1. 갑오개혁에 영향을 끼침
2. 지속적인 항쟁으로 연결(동학 → 활빈당 → 의병)
동학농민운동의 한계
1. 근대사회 건설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안 제시 못함
2. 농민층 이외의 넓은 지지층 확보 못함
* 본 포스팅은 EBS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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