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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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사건, 키워드
갑신정변
1. 임오군란 때 대원군이 재섭정하면서 통리기무아문의 이름일 내렸지만
일련의 개혁들은 계속해서 전개
→ 전환국, 박문국, 기기창(1883) → 재정확보 필요
2. 재정확보와 관련하여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의 점예한 대립
3. 임오군란 이후 고문으로 파견된 묄렌도르프와 온건개화파는 당오전 발행 주장
4. 하지만 김옥균을 중심으로한 급진개화파의 생각은 달랐다
→ 일본에서 차관 도입 주장 → 실패 → 정치적으로 입지가 좁아짐
5. 이와 동시에 청나라는 베트남의 주도권을 두고 프랑스와 전쟁
→ 임오군란 때 투입했던 병력의 1/2 감축
→ 또한 정변 발생 시 일본이 군사지원을 하기로 약속
6.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을 중심으로 갑신정변을 일으킴(1884)
갑신정변 과정
1. 우정국 축하연을 활용 → 참가할 민씨 척족 세력 제거
→ 왕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고 자신들의 구상을 실현하고자 함
2. 급진개화파의 일부는 창덕궁으로 가서 고종과 명성황후를 경운궁으로 옮김
3. 명성황후의 끈질긴 요구로 창덕궁으로 복귀 → 14개조 개혁안 발표
4. 14개조 개혁안(주장안) → 급진개화파에 의해 발표 → 실패
ⓐ 정치적 : 청의 종주권 부정, 대원군의 환국(자주주권국의 위상 복구 차원),
입헌군주제 지향, 4영 → 1영 축소
ⓑ 경제적 : 재정의 일원화 →★의정부 6조 체제의 <호조> → 재정 안정성과 세금수취의 공정성 확보
지조법 개혁(세금조정안일뿐 토지 분배 건의가 아니다)
혜상공국(보부상 상행위 관측) 혁파
환곡제 폐지
ⓒ 사회적 : 신분제의 폐지, 규장각(척족 전용의 등용문) 폐지
5. 청의 진압 과정에서 일본과의 교전이 있었다.
6. 일본은 군사지원 약속 불이행
7. 청의 진압이 성공하자 내정간섭이 심화
8. 피해를 입은 일본과 한성조약 체결
→ 배상금 지불 요구, 전소(全燒)한 일본 공사관 신축 비용 요구
9. 청과 일본 사이에 ★텐진조약 체결
* 텐진조약 : 임오군란 과정에서 한반도에 주둔하게 된 양국 군대 공동 철수
군대 개입 시 상대국에게 통보 → 청일 전쟁의 빌미
10. 의의 :갑신정변은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 개혁운동
한계 : 기층민들과 함께 하지 못한 위로부터의 개혁(토지 개혁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군대 행정조직 변천
5군영 : 흥선대원군 하야 전까지의 군대 체제
↓
2영 : 통리기무아문(민씨 정권)이 5군영을 2영으로 축소
↓
5군영 : 임오군란 당시 흥선대원군에 의해 5군영으로 복귀
↓
4영 :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에서 파견된 고문들에 의해서 4영으로 바뀜
↓
1영 : 갑신정변 세력들이 4영을 1영으로 축소
* 본 포스팅은 EBS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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