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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STORY로 보는 韓國史 <흥선대원군의 대내 개혁>

정보/한국사(근현대사)

by 은밀하군 2015. 10. 2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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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았을 때의 시대적 배경을 살핀다. (1863년, 고종 나이 12세)

2. 정치적 : 세도정치기(안동 김씨, 풍양 조씨) → 비변사와 5군영을 장악 → 권력을 무한대로 확장

3. 경제적 : 3정의 문란이 심했다.(3정 : 정정, 군정, 환곡)
     흥선대원군 집권 이전 시기에

     영정법(인조) : 1결당 4~6두

     ⓑ 대동법(광해군) : 1결당 12두

     ⓒ 균역법(영조) : 결작 1결당 2두

    으로 해결하려 했던 시도가 있었다.


4.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 타파를 위해 왕권 강화를 시도

5. 우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비변사의 기능을 축소

     ⓐ 비변사 : 행정+군사 → 의정부(행정)+삼군부(행정) 으로 나눔

          * 비변사 : 임시상설기구(중종) 상설기구(명종) → 최고권력기구(양란 이후)

6. 법전 완성 : 

    ⓐ 대전회통('경국전과 속대을 서로() 하게하다'는 의미)

    ⓑ 육전조례(강력한 법체계 정비)

7.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세도가문의 축출과 경복궁을 재건축

    ⓐ 경복궁 중건을 위해 원납전 징수(성격 : 기부금 → 강제)

    ⓑ 당백전 발행인플레이션 발생(물가 ↑,화폐가치↓) ↔ 전황

8. 향반들의 중앙 공격의 씨를 말리기 위해 서원 정리

     * 서원 : 면세특권과 수탈을 통해 기층민들의 삶을 피폐화

                    → 이런 서원을 흥선대원군이 47개소만 남기고 모두 철폐

9. 만동묘(만력제의 은혜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제사지내던 곳) 철폐

     → 성리학자들의 반발(만동묘는 기득권층의 사대주의의 표상이었기 때문)

    * 만력제 : 임진왜란 당시 군사를 파견하여준 명의 황제


10. 삼정의 문란 해소 → 민생안정과  재정확보를 위해

      ⓐ 전정의 문란 : 양전사업 실시 → 면세지 색출

      ⓑ 군정의 문란 :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로 인한 양반 급증 → 역 면세 대상 증가 → 세수를 확보할 수 없다

                                    동포제(洞布制) 실시 → 양반들의 반발 호포제(戶布制)로 이름만 변경하여 실시

          * 호포제의 의의 : ① 양반들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포 징수

                                         ②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이 내는 조세의 정의 실현

                                         ③ 신분제 약화(신분제 철폐는 아니다)

      ⓒ 환곡의 문란 : 환곡의 문란이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사창제로 극복

          * 사창제 : 악한 수탈을 자행하는 공무원 대신 면(面)의 덕망 깊은 민(民)이 직접 관리하고

                            자율적으로 곡식을 빌리게 함 → 공무원의 개입 차단


11. 양반들의 묘지림을 벌목하여 경복궁 공사에 씀

12. 최익현의 상소 : 최익현이 고종의 친정을 주장 → 흥선대원군 하야




* 본 포스팅은 EBS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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