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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STORY로 보는 韓國史 <좌우합작운동>

정보/한국사(근현대사)

by 은밀하군 2015. 11. 2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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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합작운동

 

        흐름(락)

주요인물, 단체

건, 키워드

 

좌우합작운동

1. 광복에 대한 외부적인 요인은

    ⓐ 카이로 회담

    ⓑ 얄타 회담

    ⓒ 포츠담 회의

가 있다.

2. 얄타 회담에서 소련 참전을 논의한 결과 38도선이 확정

    → 1945년 8월 15일 독립

3. 국내의 조선건국동맹·국외의 조선독립동맹·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이 있었다.

    → 독립의 내부적인 요인

4. 하지만 내부적인 요인보다 외부적인 요인이 광복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5. 미군정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조선건국동맹은 협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지방에 인민위원회 설치 → 빠르게 공산화

6. 이후 조선인민공화국을 일방적으로 선포

7. 북에는 소련이, 남에는 미국이 들어와 있는데

     미국은 어떠한 정부조직도 인정하지 않고 미군정만을 고집 → 친일파가 회생

8. 간접통치 형태를 선택·미군정은 직접통치

    : 북한은 이미 인민공화국이 들어설 준비를 마쳤고, 남한은 사회가 매우 혼란했기 때문에

      미국과 소련의 통치 노선이 나뉨

9.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스크바 3상회의 개최(1945. 12)

     → 미국·영국·소련

10.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는

      ⓐ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 신탁통치한다(최대 5년, 대상국 : 미국·소련·영국·중국)

      미소공동위원회를 연다.

11. 모스크바 3상 회의의 내용이 국내에 잘못 전달되면서 국내에 반공 세력 확산

12. 박헌영이 제대로 된 사실을 알리고 임시정부 설립이 거론된 것이 확산되자

       좌익세력은 입장을 바꾸어 총체적 지지로 전환

13. 우익세력은 임시정부 수립 항목의 유무를 떠나 신탁통치 항목 때문에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 반대

14. 우익의 대표적 인물은 김구·이승만 좌익의 대표적 인물은 박헌영

15. 입장차이로 인한 첨예한 대립이 전개

        → 이러한 과정에서 친일파가 반공투사가 되면서 애국자로 둔갑

16. 좌우대립이 심화되는 와중에 1946년 제 1차 미소공동위원회 개최 : 참여 자격이 쟁점

      ⓐ 미국의 입장 :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 소련의 입장 : 미소공동위원회는 모스크바 3상 회의의 연장선이므로

                                   모스크바 3상 회의 반대 세력은 참여 불가능하다.

        ⇒ 결론 없이 휴회

17. 1946년 북한에서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이 된다.

      ⓐ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에서 민주개혁 단행

      ⓑ 토지개혁(무상몰수·무상분배), 친일파 처단

18. 토지개혁의 분배는 북한 정권의 단독 수립 의지를 보여준다.

      → 남측에 부담이 됨

19. 이승만단정론(정읍발언)

      : 제 1차 미소공동위원회도 휴회가 됐고

        북한은 토지개혁을 단행하는 등 국가의 기틀이 마련되고 있어

        남한 역시 공산화 될 가능성이 크다.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하자!"

20. 분단을 우려한 다른 세력들은 이것을 경계하고

        좌우합작운동 전개(중도우파·중도좌파)

21. 김규식(중도우파)과 여운형(중도좌파)이 주도적인 모습

        : 극우세력이나 극좌세력에 힘을 실어주면 상대 세력의 반발로 인한 사회혼란을 피하기 위해

          미군정은 좌우합작세력 지지

22. 좌우합작 7원칙 공개

      ⓐ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 미소공동위원회를 재개한다.

      ⓒ 토지분배에서 의견차를 보임(해결안 : 유상몰수·무상분배)

      ⓓ 친일파 처단 : 우익세력의 미온적 태도

      ⓔ 입법기구 창설 : 좌익세력의 반대

23. 극우·극좌의 불참 → 미군정의 지지 철회 → 여운형 암살(1947) → 동력을 잃음

24. 제 2차 미소공동위원회도 결렬(1947)

      ⇒ 트루먼 독트린(냉전의 선언적 시작)으로 완전 결렬

   

 

            

  * 본 포스팅은 EBS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를 요약/정리한 것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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